인공 심박동기의 기본 업데이트 (2026)
인공 심박동기의 기본 업데이트 (2026)
서론 = 진료실에서 pacemaker를 설명하면서...
1차 의료 현장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대학병원에서는 오히려 시간이 없어 충분히 나누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환자분들과 천천히 풀어갈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왜 심박동기가 필요한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 "일상에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처럼, 진단과 치료 결정 이후에도 환자분이 실제로 궁금해하시는 것들을 함께 짚어드릴 수 있다는 점이 개원 현장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반 박동기 제세동기 뿐 아니라 무전극선 박동기와 전도계 박동 분야에서 오랫동안 시술을 해왔고, 전국 시술 건수 1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은 더 조심스럽습니다. 물론 직접 시술을 집도할 때의 보람도 각별하지만, 시술자로서의 시각과 설명자로서의 시각을 동시에 유지하려다 보니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균형 감각이 생기고 그만큼 공부도 더 주의해서 깊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당분간 직접 집도하지 않는 만큼, 어느 회사도 어느 술기도 편들지 않고 현재 가장 좋은 근거를 기준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많이 해봤기 때문에 알고, 알기 때문에 균형을 지키려 합니다.
최신 근거를 계속 찾아보게 되고 업데이트하면서, 그것을 현장의 언어로 다시 풀어내는 과정이 결국 환자분께도, 저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느낍니다.
아래 내용은 2025년 6월 NEJM Evidence에 발표된 리뷰 논문을 바탕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참고문헌: Aldaas OM, Roberge-Lacharite AS, Birgersdotter-Green U. Pacemakers. NEJM Evid. 2025;4(7). DOI: 10.1056/EVIDra2400323)
심박동기란 무엇인가요?
심박동기는 심장이 너무 천천히 뛰는 서맥성 부정맥을 치료하는 장치입니다. 약으로는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는 비가역적 서맥에서 유일한 확정적 치료법이며, 전 세계적으로 매년 100만 개 이상이 삽입되고 있습니다. 고령화와 심혈관 질환 유병률 증가로 앞으로 그 수는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기본 구조는 세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전기 자극을 만드는 발생기/본체(pulse generator, can), 자극을 심장으로 전달하는 리드(lead, 전선), 그리고 심장 리듬을 감지하고 필요 시 자극을 전달하는 전극(electrode)입니다. 발생기는 보통 쇄골 아래 흉근 앞쪽에 삽입되며, 심장이 스스로 제대로 뛰면 자극을 보내지 않고, 심박수가 설정치 이하로 떨어질 때만 작동합니다.
박동기의 기능은 NBG 코드라는 국제 표준 명명 체계로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DDD는 심방과 심실을 모두 자극하고 감지하며 서로 연동되는 방식, VVI는 심실만 자극하고 감지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R이 붙으면(DDDR, VVIR) 활동량에 따라 심박수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이 추가됩니다. 환자의 부정맥 종류, 운동 능력, 좌심실 기능, 동반 질환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장 적합한 모드를 선택합니다.
어떤 종류가 있나요?
일반 경정맥 박동기
가장 널리 사용되는 기본 방식입니다. 쇄골 아래에 발생기를 삽입하고 정맥을 통해 리드를 심장 안으로 넣습니다. 단일 챔버(심방 또는 심실)와 이중 챔버(심방+심실) 시스템이 있으며, 심실만 자극하는 VVI 방식은 방실 비동기, 즉 심방과 심실이 따로 노는 현상을 일으켜 일부 환자에서 박동기 증후군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가능하면 심방-심실이 박자 맞추어 함께 뛸 수 있는 DDD 모드를 선택하고, 불필요한 심실 박동을 최소화하는 알고리즘도 함께 활용합니다.
무전극선 박동기 (Leadless Pacemaker)
리드 없이 작은 박동기 기기 전체를 심장 안에 직접 삽입하는 방식입니다. 주로는 대퇴부(허벅지 안쪽) 정맥을 통해 카테터로 접근해 삽입하며, 필요 시 경정맥 접근도 가능합니다. 정맥 리드가 없어 감염, 혈관 협착, 리드 탈위 위험이 낮고 회복이 빠른 장점이 있습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러한 환자분들께 급여 적용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심실 단일 박동만 가능했으나, 현재는 심방 감지와 연동이 가능한 VDDR 방식, 나아가 완전 이중 챔버(DDDR)까지 제공됩니다. 배터리 수명도 경정맥 박동기보다 길지만, 두 기기가 서로 교신하는 이중 챔버 모드로 프로그래밍하면 수명이 상당히 단축될 수 있습니다(심방 기기 평균 6.4년, 심실 기기 11.3년).
심장재동기화 기능은 적절히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 기기 제거 경험이 아직 제한적이라는 점, 상대적으로 비용이 높다는 점은 한계로 남아 있습니다.
항목
경정맥 박동기
무전극선 박동기
감염 위험
높음
낮음
리드 관련 합병증
있음
없음
심장재동기화(CRT)
가능
불가
배터리 수명(중앙값)
10.8년
12.1년
원격 모니터링
전 기종 가능
일부 기종만 가능
MRI 조건부
가능
가능
비용
낮음
높음
기기 제거
경험 충분
경험 제한적
심장재동기화치료 (CRT)
일반 박동기와 무전극선 박동기 모두 심방-심실 동기는 유지할 수 있지만, 우심실에서만 자극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두 심실 사이의 동기화 (박자 맞추어 뛰는 것)는 보장하지 못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양쪽 심실을 동시에 자극하는 CRT가 있습니다.
좌심실은 관상정맥동 리드, 심외막 리드, 또는 좌심실 내 무전극선 기기를 통해 자극합니다. 수축기 심부전과 좌각차단이 동반된 경우 가장 효과적이며, MADIT-CRT, RAFT 같은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심부전 입원과 사건을 유의하게 줄이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다만 CRT가 모든 환자에게 효과적인 것은 아닙니다. QRS가 130ms 미만으로 좁은 환자에서는 오히려 사망률이 증가할 수 있어, 현재 가이드라인은 이런 경우를 Class III(불필요)로 규정합니다. CRT에 ICD를 함께 탑재한 CRT-D와 박동 기능만 있는 CRT-P의 선택도 환자 상황에 따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전도계 박동 (CSP, Conduction System Pacing)
가장 주목받고 있는 최신 방향입니다. 심장 본래의 전기 전도 경로인 His-Purkinje 시스템을 직접 자극해, 가능한 한 자연스러운 심실 수축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경정맥 삽입 방식을 통해 시술하게 됩니다.
His속 박동(His-bundle pacing)은 근위부 중격의 His속을 직접 포착하는 방식입니다. 생리적으로 이상적이지만 리드 탈위, 높은 자극 역치로 인한 배터리 조기 소모, 심방 과감지 등 기술적 난이도가 높습니다.
좌각지 영역 박동(LBBAP, Left Bundle Branch Area Pacing)은 His속 원위부 우심실 중격에 리드를 깊이 박아 좌각지를 직접 포착하는 방식입니다. QRS를 120ms 미만으로 좁히는 높은 성공률을 보이며, 좌심실 박출률과 심부전 증상 개선 효과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His속 박동에 비해 안정성과 포착 역치에서 유리하지만, 리드를 중격 깊이 위치시키는 특성상 중격 천공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현재 LBBAP를 평가하는 대규모 무작위 임상시험이 전 세계에서 동시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 2~3년 안에 LBBAP가 표준 치료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를 결정할 중요한 데이터들이 나올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 심박동기가 필요한가요?
동기능 부전 (Sinus Node Dysfunction)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하나입니다. 심박수 숫자가 아니라 증상이 있느냐 없느냐가 삽입 결정의 절대적 기준입니다.
분당 40회 미만이나 4초 이상의 동정지가 있어도 증상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삽입 대상이 아닙니다. 특히 수면 중 나타나는 서맥은 생리적인 경우가 많아 그 자체만으로는 적응증이 되지 않습니다. 반면 어지럼증, 실신, 극심한 피로 등 증상이 동기능 저하와 직접 연결된다고 판단되면 반드시 삽입을 고려합니다. 심방세동-서맥 증후군(tachy-brady syndrome)도 포함됩니다.
방실 차단 (AV Block)
차단의 중증도와 가역성이 핵심 기준입니다. 2도 Mobitz II, 인프라노달 2:1 차단, 고도 차단, 완전 방실 차단처럼 심각하고 비가역적인 차단은 증상 유무에 관계없이 삽입을 권고합니다. 심방세동과 증상성 서맥이 동반된 경우도 포함됩니다.
반면 미주신경 항진이나 약물처럼 제거 가능한 원인으로 생긴 차단, 무증상 1도 차단이나 AV 노드 수준의 2도 차단은 삽입 대상이 아닙니다.
근긴장성 이영양증 type 1이나 Kearns-Sayre 증후군 같은 신경근육 질환, 심장 사르코이드증 같은 침윤성 심근병증, Lamin A/C 유전자 변이처럼 특수한 기저 질환이 있을 때는 차단 정도가 심하지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삽입을 고려합니다.
심근경색 후 차단
급성 심근경색 후 고도 방실 차단이 발생하면 우선 임시 박동으로 대응하고, 5일 이상 지속될 경우 영구 삽입을 권고합니다. 전벽 심근경색 후 발생한 차단은 하벽 심근경색에 비해 회복 가능성이 낮아 더 적극적으로 판단합니다.
신경심인성 실신
반복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실신 환자 중 심정지 성분이 확인된 경우에 제한적으로 고려합니다. 미국 가이드라인(Class IIb)과 유럽 가이드라인(Class I) 간에 권고 강도 차이가 있어, 이 부분은 개별 환자의 상황과 담당 의사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심부전과 인공심장박동기
박출률이 떨어진 심부전(LVEF ≤35%)에 좌각차단(QRS ≥130ms)이 동반된 경우 CRT는 가장 확실한 근거를 가진 치료입니다. 약물치료의 보조로 심부전 입원과 사망을 유의하게 줄이는 것이 대규모 임상시험으로 입증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우심실 박동 자체가 심부전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심실에서만 자극이 이루어지면 좌각차단과 유사한 전기 전도 패턴이 만들어져 심실 비동기가 생기고, 이것이 반복되면 박출률이 떨어지고 심방세동 빈도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를 박동기 유발 심근병증(pacing-induced cardiomyopathy)이라 하며, 박동 부담이 높은 환자(심실 박동 비율 >40%)에서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전도계 박동(LBBAP)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합병증과 주의사항
경정맥 박동기 삽입 시 즉각적 합병증은 약 5~10%에서 발생하며, 장기적으로는 연간 1~2% 수준입니다. 주요 합병증으로는 리드 위치 변경, 기흉, 혈종, 심낭압전, 감염, 기기 오작동이 있고, 드물게 심부정맥 혈전증, 삼첨판 손상, 폐색전증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감염은 심각한 합병증입니다. 포도상구균 감염, 판막 심내막염, 반복적 균혈증이 확인되면 기기 전체를 완전 제거해야 하며, 이 과정은 흉부외과 지원이 가능한 전문센터에서 계획되어야 합니다. 기기 업그레이드나 발생기 교체 시에도 합병증 위험이 높아집니다.
무전극선 박동기는 리드 관련 합병증이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삽입 카테터가 굵어 서혜부 혈관 손상이 생길 수 있고, 심낭압전이나 기기 탈위 위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장기 데이터가 아직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술 이후에는 정기적인 추적 관찰이 필수입니다. 기기 상태, 배터리 잔량, 리드 기능, 부정맥 발생 여부를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하며, 현재 저희 클리닉에서도 박동기 분석기를 갖추고 직원 교육을 진행하며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기술 방향
국내에서는 제도적 한계로 어려움이 있으나 원격 모니터링은 이미 표준화되어 있습니다. 환자가 별도 조작을 하지 않아도 기기 상태와 부정맥 발생이 자동으로 전송되어, 외래 방문 횟수를 줄이면서도 더 세밀한 관리가 가능합니다. 심방세동, 심실빈맥, 기기 오작동을 조기에 발견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국내에서는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향후 박동기 관리에 있어 더욱 발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MRI 호환성도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현재 모든 현대 박동기는 MRI 조건부 설계를 적용하고 있으며, 비호환 기기를 가진 환자도 1.5 Tesla 장비에서 엄격한 프로토콜(촬영 전후 기기 점검)하에 촬영이 가능합니다.
충전식 배터리 기술도 연구 중입니다. 현재 리튬 배터리는 10년 이상의 수명을 목표로 하지만, 환자 수명 연장으로 일생 동안 여러 차례 교체가 필요한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무선 외부 충전 방식이나 체동과 중력을 이용한 자가 발전 시스템이 개발 중이며, 교체 수술 횟수를 줄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가장 주목할 미래 방향은 AI와 원격 모니터링의 결합입니다. 배터리 소모 예측, 응급 상황 조기 경보, 원격 파라미터 조정, 환자 개별 생리 패턴에 맞춘 맞춤형 박동 전략이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심박동기는 지난 수십 년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왔고,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LBBAP 임상시험 결과가 앞으로 2~3년 안에 나오면, 생리적 박동이 표준 치료로 자리 잡는 새로운 국면이 열릴 수 있습니다. 어떤 기기가 무조건 낫다는 단순한 답보다는, 환자 개개인의 상황에 맞게 가장 적합한 선택을 하는 것이 언제나 핵심입니다. 궁금하신 점은 진료실에서 언제든지 함께 이야기 나눠드리겠습니다.
대표원장 차명진
내과 전문의 / 심장내과 전문의 / 부정맥 중재시술 전문의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 역임
본 칼럼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개별 환자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있으시면 진료를 통해 상담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