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특이적 T파 이상, 정밀검사를 받아야 할까요
같은 심전도를 놓고도 판독하는 사람에 따라 자주 판단이 나뉘는 소견이 있습니다. 검진 결과지에 자주 적히는 비특이적 T파 이상이 바로 그렇습니다.

정밀 검사 결과 정상이신 분인데 심전도 결과는 이렇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T파란 무엇일까요?
심전도를 찍으면 파형이 순서대로 그려집니다. 그중 마지막에 나오는 완만한 언덕 모양이 T파입니다. 심장 근육이 한 번 수축한 뒤 다음 박동을 위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회복 과정이 이 파형으로 기록되는 것이지요.

이 회복 과정은 심장 근육 (심근)의 상태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T파는 심장에 문제가 생기면 비교적 이른 시기에 모양이 변하는 파형이면서, 동시에 아무 문제가 없어도 그날의 조건에 따라 쉽게 흔들리는 파형이기도 합니다. 아픈 데가 없어서 받은 검진에서 비특이적 T파 이상이라는 한 줄이 그렇게 자주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발견한 것이 아니라, 판단을 미뤄 둔 것입니다
비특이적 T파 이상은 이 파형이 교과서적인 정상 모양과 조금 다른데, 그렇다고 어떤 병 때문이라고 말할 근거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상이 발견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이것만으로는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판단을 미뤄 둔다는 말에 가깝습니다.

판정 기준 자체도 아주 미세합니다. T파가 평평해졌거나 얕게 뒤집힌 정도를 밀리미터 단위로 나누는데, 훈련된 판독자들 사이에서도 이 소견이 있다고 의견이 일치하는 비율은 열 번 중 네 번 정도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의 심전도가 기기에 따라 다르게 읽히기도 합니다.
흔한 소견이고, 원인도 여러 가지입니다
국내 검진 수검자 약 7만 5천 명을 분석한 연구에서 다른 이상 없이 이 소견만 있는 경우는 1.5%였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서, 4만 명이 넘는 유럽 자료에서는 젊은 성인의 3% 남짓이던 것이 60대 후반에는 30% 가까이 올라갔습니다. 여성에서 더 흔하다는 보고도 많습니다.
원인으로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검사 자세와 전극 위치. 누워서 찍은 심전도와 앉거나 선 자세에서 찍은 심전도는 T파가 다르게 나올 수 있고, 실제로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 새로운 T파 역전이 생기는 경우가 열에 한둘 정도 보고됩니다. 가슴 전극을 원래 위치보다 높게 붙여도 비슷한 모양이 만들어집니다.
검사 당시의 몸 상태. 긴장, 과호흡, 식사 직후 등이 영향을 줍니다.
갑상선기능저하증, 빈혈, 칼륨을 비롯한 전해질 이상.
복용 중인 약. 디곡신, 일부 부정맥약과 정신과 약이 T파 모양을 바꿉니다.
젊은 연령에서 남아 있는 정상 변이. 특히 앞가슴 첫 두 유도에 국한된 얕은 T파 역전은 젊은 여성에서 드물지 않은 정상 소견입니다.
여기까지가 검진에서 이 문구를 만나는 분들의 대부분에 해당합니다.
그래도 그냥 지나치지는 않습니다
대규모 추적 연구들을 보면, 이 소견이 있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에 비해 장기적으로 심혈관 사망 위험이 조금 높게 나옵니다. 대략 1.3배에서 1.8배 정도입니다. 다만 이 숫자는 수천 명을 수십 년 따라간 집단의 평균이지, 한 사람의 진단이 아닙니다. 실제로 같은 연구에서 심근경색 발생 자체는 늘지 않았습니다.
국내 자료에서는 성별에 따라 의미가 달랐습니다. 13만 명이 넘는 검진 수검자를 분석했더니 남성에서는 이 소견이 관상동맥 석회화와 관련이 있었지만, 여성에서는 관련이 없었습니다. 또 다른 국내 연구에서는 이 소견이 있는 사람에게서 좌심실이 두꺼워져 있거나 이완 기능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즉 대부분은 아무 일도 아니지만, 일부에서는 아직 증상으로 드러나지 않은 변화의 첫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시하지도, 과하게 검사하지도 않는 선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놓치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T파가 깊고 대칭적으로 뒤집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심첨부 비대심근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심장 아래쪽 끝부분의 근육이 두꺼워지는 질환인데, 서구에서는 비대심근증 환자의 3% 정도인 반면 국내 자료에서는 30%에 이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유형입니다. 이 병은 앞가슴 유도에 아주 깊은 음성 T파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고, 심전도가 진단의 실마리가 되는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가슴 통증이 있다가 가라앉은 뒤 앞가슴 유도에 깊은 T파 변화가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심장 앞쪽 큰 혈관에 심한 협착이 있다는 신호일 수 있어, 이런 형태에서는 운동부하검사부터 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합니다. 옆벽 유도에 T파 역전이 있는 경우도 정상 변이로 넘기지 않고 심초음파를 확인합니다.
이 구분은 결국 어느 유도에, 얼마나 깊게, 어떤 모양으로 나타났는지를 보는 일입니다. 비특이적이라는 한 단어 뒤에는 이렇게 서로 다른 상황이 섞여 있습니다.
실제로는 이런 순서로 확인합니다
먼저 이전에 찍은 심전도와 비교합니다. 같은 모양이 몇 년째 그대로라면 새로 생긴 변화가 아니라는 뜻이고, 이것만으로도 걱정의 상당 부분이 정리됩니다.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비교해야 하는 것은 판독 문구가 아니라 파형 자체입니다. 똑같이 비특이적 T파 이상이라고 적혀 있어도 어느 유도에서 얼마나 어떤 모양으로 나타났는지는 사람마다, 그리고 같은 사람의 해마다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결과지에 적힌 한 줄만 가지고는 이 비교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검사를 받으신 기관에 심전도 파형이 그려진 출력물이나 파일을 요청해서 가지고 오시면 진료가 훨씬 정확해집니다. 사본 발급을 요청하시면 대부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 추가 검사 없이 정리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반대로 예전에 없던 변화가 새로 생겼다면 그때는 이유를 찾습니다.
다음으로 증상과 위험 요인을 확인합니다. 가슴 통증이나 운동할 때의 답답함, 실신, 가족 중 젊은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신 분이 있는지가 특히 중요합니다. 혈압, 당뇨, 콜레스테롤, 흡연도 함께 봅니다.
필요하면 혈액검사로 갑상선 기능, 빈혈, 전해질을 확인하고, 심초음파로 심장 근육의 두께와 기능을 봅니다. 심전도에 이상이 있을 때 심초음파를 시행하는 것은 국제 기준에서도 적절한 검사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에서 대부분 정리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증상이 없고 심혈관 위험도 낮은 사람에게 심혈관 질환 예방을 목적으로 심전도 선별검사를 하는 것은 국제 권고에서 권하지 않는 검사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애매한 소견이 나올 때마다 검사가 꼬리를 물고 늘어나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미 나온 결과지를 그냥 덮어 두시라는 뜻은 아닙니다. 비특이적 T파 이상은 대부분 병이 아니지만, 그 판단은 이전 심전도와 비교하고 증상을 듣고 필요한 만큼만 확인한 다음에 내려야 합니다. 결과지 한 장을 들고 오시면 대개 그날 정리가 됩니다.
대표원장 차명진 (서울프라임하트내과)
내과 전문의 / 심장내과 전문의 / 부정맥 중재시술 전문의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부정맥) /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부정맥) 전임교수 역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석사/박사
본 칼럼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개별 환자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있으시면 진료를 통해 상담받으시기 바랍니다.